볼쇼이 출신들의 숨막히는 명연···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지젤’

입력 2024-01-22 15:51   수정 2024-01-23 11:35



러시아 발레리나 올가 스미르노바(33)와 이탈리아 발레리노 자코포 티시(29). 이 두 스타 무용수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간판급 주역 무용수로 활약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각, 때로는 함께 주요 볼쇼이 발레 공연 무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들의 공연 실황은 영상으로도 촬영돼 세계 각국의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특히 스미르노바가 오데트·오딜 역. 티시가 지크프리트 역을 맡아 함께 무대에 섰던 ‘백조의 호수’ 공연은 2022년 1월 국내에서도 상영돼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백조의 호수’는 두 무용수가 볼쇼이에서 함께 출연한 거의 마지막 작품이 되다시피 했다. 이들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해 몇몇 동료들과 함께 볼쇼이와 러시아를 떠났다. 할아버지가 우크라이나 출신인 스미르노바는 그해 유럽 명문 발레단 중 한 곳인 네덜란드 국립발레단(Dutch National Ballet, DNB)에 둥지를 틀었다. 티시는 고국인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발레단 등을 거쳐 지난해 DNB에 합류했다.

지난 21일 서울 코엑스점, 경기 고양 킨텍스점 등 메가박스 10개 점에서 처음 상영된 DNB의 ‘지젤’은 스미르노바와 티시의 탁월한 기량과 뛰어난 호흡, 180여년 간 인기를 누려온 발레 명작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지젤’은 테오필 고티에의 2막 대본에 당대 최고의 안무가 장 코랄리와 쥘 페로가 함께 춤을 짠 낭만 발레의 대표작이다. 1841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초연했다. 오늘날에는 차이콥스키와 함께 고전 발레를 만들어낸 마리우스 프티파가 원안무를 바탕으로 다시 짠 버전을 조금씩 변형하거나 각색한 버전이 주로 오른다. 현대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내용을 바꾼 마츠 에크나 매슈 본 버전을 제외하고 말이다.

DNB 버전도 마찬가지다. DNB 부예술감독인 레이첼 보잔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연습감독 리카르도 부스타만테가 프티파 버전을 바탕으로 몇몇 새로운 춤을 추가하고 내용을 현대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만들어 2009년 초연했다. 이날 상영분은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 무대에 올려진 공연 실황을 촬영한 영상이다. 스미르노바가 타이틀롤인 지젤, 티시가 알브레히트 역을 맡았다.



DNB 버전은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을 보다 더 강조한다. 1막에서도 알브레히트를 ’카사노바‘가 아니라 ’순정남‘으로 묘사한다. 특히 이전에 사라졌던 마임 장면을 부활시키는 등 현대적 감각에 맞게 드라마를 되살려 극적 몰입감을 높였다.

2막 하이라이트인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그랑 파드되(대 2인무)’에서도 이런 점이 부각된다. 첫 ‘아다지오’ 춤의 끝 장면은 알브레히트가 지젤의 순정을 영원히 간직할 것임을 암시한다. 1막에 알브레히트의 바리에이션(독무)이 추가되는 등 다른 버전에 비해 남자 주인공의 비중이 커진 것이 특징이다. 티시는 이런 순정남의 이미지를 깊이 있게 표현해냈다.



공연의 백미는 특출난 우아함과 기교로 지젤의 내면을 매혹적으로 표현해낸 스미르노바의 춤과 연기였다. 사랑에 빠진 명랑하고 순박한 시골 소녀와 실연을 당해 미쳐가는 비련의 여인(1막), 연인을 구하려는 슬픈 요정의 몸짓(2막) 등 지젤의 세 가지 모습을 감성적인 눈빛과 표정, 숨막힐 만큼 아름다운 동작으로 전달했다.

DNB 버전만의 독특한 춤도 인상적이었다. 1막의 포도 수확 마을 축제에서 ‘파드되(2인무)’를 확장한 듯한 ‘파드콰트레(4인무)’에선 젊은 커플들의 재기발랄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2막에서 투명한 하얀 망사를 머리에 쓴 채 추는 ‘윌리’들(일종의 처녀 귀신)의 첫 군무는 신비스럽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한층 더 실감 나게 연출했다.



바그너의 유도동기(라이트 모티브) 기법을 발레에 처음 도입했다는 아돌프 아담의 음악도 영화관의 입체적인 음향으로 충분히 즐길만했다. 에르만노 플로리오가 지휘하는 네덜란드 발레 오케스트라는 무대와 무용수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세심하고 적확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카메라의 시선을 수동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스크린 관람’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클로즈업과 미디엄 샷, 롱 샷을 적절하게 혼합한 영상도 공연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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